미니 뇌로 자폐 유전자 36개 동시에 규명
오스트리아·스위스 연구진, 네이처에 발표
세포마다 다른 유전자 돌연변이 유발해 분석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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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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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를 유발하는 뇌 유전자들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금까지는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실험동물을 만들어 각각 따로 기능을 연구해왔다. 말하자면 1차선 도로만 있던 뇌 유전자 연구에 8차선, 10차선 고속도로가 개통된 셈이다. 뇌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훨씬 빨리 찾아낼 수 있어 자폐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스트리아 과학원 분자생명공학연구원(IMBA)의 위르겐 크노블리히(Juergen Knoblich), 총 리(Chong Li) 박사와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의 바버라 트뢰틀라인(Barbara Treutlein) 교수 공동 연구진은 1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뇌 오가노이드(organoid)로 자폐증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에 각각 돌연변이를 유발해 그 기능을 동시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臟器)라고 불린다. 이전에는 인체 세포를 평면 배양접시에서 키워 인체 내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뇌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로 미니 뇌를 만든 것과 같다.
◇미니 뇌의 세포마다 다른 유전자 돌연변이 유발
연구진은 인간의 뇌가 다른 동물과 다르게 발달한다고 밝혔다. 인간 뇌는 피질들이 층층이 있는 구조이다. 이로 인해 신경 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언어 소통이 힘든 자폐증(ASD)이 대표적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자폐에 관여하는 여러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냈지만, 이 유전자들이 어떻게 뇌 발달 이상을 초래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실험동물은 인간과 다른 뇌 발달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크노블리히 박사는 “인간 뇌 실험 모델만이 인간의 뇌가 가진 복잡성과 특수성을 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인간 미니 뇌에서 자폐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동시에 살펴보기 위해 ‘CHOOSE(CRISPR-human organoids-scRNA-seq)’란 기술을 개발했다.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낼 수 있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로 인간 오가노이드에서 개별 세포의 유전자(scRNA) 기능을 해독한다(seq)는 뜻의 영문 역자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뇌 오가노이드 세포마다 다른 유전자에서 돌연변이를 유도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한 번에 분석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방법으로 자폐 관련 유전자 36개를 동시에 분석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연구진은 뇌 오가노이드 배양과 유전자 돌연변이를 맡았고, 스위스 연구진은 여러 유전자가 작동한 방대한 정보를 인공지능 컴퓨터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뇌 발달 과정에서 문제가 더 잘 생기는 세포를 찾아내 자폐를 유발하는 돌연변이에 취약한 세포들의 네트워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원(IMBA)의 위르겐 크노블리히 박사가 인간 뇌 오가노이드의 현미경 사진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오스트리아 과학원 분자생명공학연구원(IMBA)
◇박사 수십명 수년 걸릴 연구, 혼자서 한 번에 가능
그동안 뇌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 기능을 알아보려면 해당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생쥐를 각각 확보해야 했다. 이제는 생쥐 없이 미니 뇌 하나로 여러 유전자를 동시에 연구할 수 있다.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박사후연구원 수십명이 수년간 연구해도 생쥐의 뇌 수준에서만 연구할 수 있는 내용을, 이제 박사후연구원 한 명이 한 번에 인간 뇌 모델에서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미니 뇌에서 확인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실제로 자폐를 유발하는지 확인했다. 먼저 자폐증 환자 두 명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자폐 뇌 오가노이드는 특정 세포들에서 결함을 보였다. 연구진은 환자 한 명이 태아일 때 찍은 뇌 영상 사진에서 실제로 그와 같은 결함이 발생했던 것을 확인했다.
크노블리히 박사는 “이번에 개발한 기술이 뇌 오가노이드를 넘어 다양한 질병 관련 유전자를 연구하는 데 널리 적용될 것”이라며 “과학자와 의사의 분석 시간을 크게 줄여 질병이 발생하는 과정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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