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의 에너지 절도 현장, 한국인 과학자가 첫 포착
[사이언스샷] 미 하버드 의대 장해린 교수, 네이처 자매지에 논문 발표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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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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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가 면역세포로부터 에너지를 훔치는 모습을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가 최초로 포착했다. 도둑이 경찰의 밥을 뺏어 먹는 것과 같은 일이 우리 몸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암세포의 에너지 절도를 차단하면 면역세포가 다시 늘어나는 것도 확인돼 앞으로 암 치료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장해린 교수와 실라디타 셍굽타 교수 연구진은 “암세포가 주변 면역세포에 가느다란 관을 연결시켜 에너지 생성기관인 미토콘드리아를 훔치는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지난 18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러지’에 발표했다.
세포들은 원래 촉수 모양의 관을 서로 연결해 미토콘드리아를 비롯해 여러 구성성분을 나눈다. 이 관은 크기가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여서 나노튜브라 부른다. 하지만 암세포가 면역세포에 나노튜브를 연결한 것은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인체 방어군이 암세포에 발전소 뺏겨
먼저 연구진은 쥐에서 암세포와 면역세포를 채취해 같은 배양접시에서 16시간 동안 키웠다. 나중에 현미경으로 보니 암세포는 면역세포인 세포독성 T세포와 자연살해(NK)세포에 지름 50나노미터~2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100만분의 1미터)의 나노튜브를 연결했다. 길이는 3~100마이크로미터였다.
연구진은 미리 형광물질을 붙여둔 면역세포의 미토콘드리아가 나노튜브를 통해 암세포로 전달되는 모습도 확인했다. 나노튜브로 연결된 NK세포와 세포독성 T세포는 원래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들이다. 결국 인체에 침입한 적군이 공격군의 에너지 발전소를 훔쳐 쓰는 셈이다.
암세포는 생체 발전소를 훔쳐온 덕분에 면역세포와 연결되지 않은 암세포보다 두 배나 많은 산소를 소비했다. 그만큼 성장속도도 빨랐다. 암세포가 면역세포에서 훔쳐온 미토콘드리아로 에너지를 만들어 더 잘 자란 것이다.
반면 도둑질을 당한 면역세포는 산소 소비가 줄면서 수가 감소했다. 암세포가 면역세포와 같이 있어도 나노튜브로 연결되지 않으면 암세포 혼자 있는 것과 성장속도나 산소 호흡량이 같았다. 연구진은 사람의 흉선과 유방에서 채취한 암세포도 나노튜브로 면역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훔치는 것을 확인했다.
암치료 면역요법 효과 높일 길 열려
장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를 이용하면 최근 암환자 치료에 널리 이용되는 면역요법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면역요법은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를 강화해 암세포 탐색과 공격 능력을 높이는 치료 방법이다. 하지만 암환자 절반은 면역세포 자체가 부족해 면역요법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장 교수는 “암세포가 에너지 절도로 면역세포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막으면 면역세포가 늘어나 면역요법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쥐 실험에서 기존 면역항암제에 암세포와 면역세포 사이의 나노튜브를 없애는 약물까지 추가했더니 종양의 부피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장 교수는 서울대 재료공학부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 의대 브리검 여성병원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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