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만성 통증도 끊어내나

통증 전달하는 유전자만 차단해

제노메딕스 승인 2021.03.25 16:34 의견 0
유전자 가위로 척수에서 뇌로 통증 신호가 전달되는 경로를 차단하면
만성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만성 통증은 근본 치료제가 없다. 증상이 심하면 진통제를 처방하는데, 마약 성분이 들어있어 중독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과학자들이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유전자만 차단해 마약성 진통제 없이 만성 통증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샌디에이고)의 프라샨트 말리 교수 연구진은 지난 1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생쥐의 통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원하는 유전자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을 말한다. 길잡이 격인 유전 물질이 특정 DNA를 찾아가 지퍼처럼 결합하면 그 부위를 캐스9라는 효소 단백질로 잘라낸다.

말리 교수 연구진은 전기를 띤 물질들이 통과하면서 통증 신호가 전달되는 이온 채널에 주목했다. 그중 Nav1.7이란 나트륨 이온 채널이 만성 통증에 중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신경세포에서 Nav1.7 유전자만 골라 차단해 척수에서 뇌로 통증 신호가 가지 못하게 했다. 과거에도 합성 약물이나 항체 단백질로 Nav1.7을 차단했지만 유사한 다른 채널까지 차단해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마비되는 등 부작용이 심했다.

유전자 가위를 무해한 바이러스에 끼워 생쥐의 척수에 투여하자 극심한 통증을 겪던 생쥐가 바로 통증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치료 효과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사한 지 44주까지 지속됐다. 다른 이온 채널은 건드리지 않아 통증 이외 다른 감각은 그대로 유지됐고, 별다른 부작용도 없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이미 치명적 혈액 질환과 실명을 부르는 유전 질환을 가진 환자를 치료하는 데 이용됐다. 하지만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거나 다른 유전자로 바꾸면 자손에게도 바뀐 유전자가 전달된다는 점에서 유전자 변형 논란이 일었다.

반면 UC샌디에이고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의 효소 단백질을 바꿔 통증 유전자를 잘라내지 않고 작동만 하지 못하게 막았다. 유전자에 항구적 변화를 유발하지는 않아 유전자 변형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척수 신경세포의 현미경 사진 / 사이언스제공


저작권자 ⓒ 제노메딕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